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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후기

[사무라이 블레이드] 190309 《달이여, 물에 잠기어라》 후기

by sophrosyne 2019. 3. 26.

 

 

 

 

 

 

 

이하의 문단에는 아본 님의 사무라이 블레이드 시나리오 <달이여, 물에 잠기어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 예정이 있으신 분께서는 열람을 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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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정말 얼마만의... 티스토리에 쓰는 후기인지(머쓱) 심지어 플레이 일자보다 많이 늦었네요. 하지만 늦게라도 꼭 후기를 쓰고 싶어서 이렇게 게시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ㅠㅡㅠ

 

음악은 Coldplay의 <Fix you>입니다. 뭐 곡이야 유명하고... 첨부한 건 알렉스 구트가 작년 이맘때 커버링한 버전이고, 플레이 끝나고 나서 플레이리스트 돌리다가 다시 딱 마주쳤을 때 제 PC, 스즈란의 카르마 페이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 이게 참... 운명의 곡이구나 했죠. 그 때 그 나무 아래에 서 있던 부모님이 스즈란이 나아갈 수 있게끔 도닥이고, 스즈란이 자신의 과오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성장해,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가는 장면에 너무나도 걸맞는 가사라고 생각했어요.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When you lose something you cannot replaceoh and tears come streaming down your faceAnd ITears streaming down your faceI promise you I will learn from all my mistakesoh and the tears streaming down your faceAnd I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봄스님 후기에도 이미 적혀있지만...(ㅋㅋㅋ) 그 테이블에 모인 네 명 중 세 명은 COT에서 아본님의 사무라이 블레이드 테이블에 신청했다가 낙차하고 그날 시노비가미 테이블을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반 년이 지나고 봄스님이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함께할 수 있었어요.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한 갓마스터 아본님과 함께하는 플레이라니... 일전에도 아본님께서 시노비가미 2인 시나리오 <돌아갈 길은 좁고, 세워진 벽은 높으니>를 OR 마스터링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고, 이렇게 사무라이 블레이드 테이블에서 다시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사실 긴장도 좀 됐고요. 하지만 물론... 플레이에 들어가고 룰 설명에 집중하면서 그런 긴장감을 싹 잊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화투를 전혀 몰라서... 화투패가 중요한 컨텐츠라는 사실에 괜찮을까, 싶었는데 플레이 내에서 화투 때문에 헤매는 부분은 아본님이나 다른 플레이어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이전 시노비가미 플레이 때도 느꼈지만 아본님의 플레이 세팅... 오프라인에서도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예쁜 스탠드형 서머리들, 화투를 꽂을 수 있게 만들어진 파일철, 무려 책자 형태인 번역자료까지... 사실 가장 놀랐던 건 비주얼적 자료보다도, 프레젠테이션 형태로 세계관을 설명해주신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프로 같을수가?! 행사를 위해 준비하신 시나리오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처음에는 우와 우와만 연발했네요. 플레이를 하기 위한 멋진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아본님 마스터링에는 준비도 연출도 많이 배워가는 기분이 듭니다.



<달이여, 물에 잠기어라>는 교토를 배경으로, 비월문이라는 혼백사 집단을 두고 얽히는 네 PC의 이야기입니다. PC1은 멘던님의 아야, PC2는 753님의 유즈카, PC4는 봄스님의 쿠키코, 그리고 PC3은 저의 스즈란이었습니다.

 

PC3, 신기의 무녀 롯카인 스즈란(六花院鈴蘭)

. 사실 PC3을 고르기는 했지만 막상 신기의 무녀라니 컨셉 잡을 수 있을까 이런거 잘 못하는데... 하는 걱정이 좀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게 저는 시노비가미에서도 히라사카기관을 플레이한 게 손에 꼽고, 무녀라고 하면 어떻게 알피해야하나 하고 막막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경력은 무뢰배(...), 출신은 버린 과거, 각성은 죄의 십자가. 이 컨셉을 어떻게 들고 갔네?! 라고 생각하실 순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주사위가 이렇게 나와줘서 캐릭터메이킹이 정말 편했어요. 마지막 각성을 굴릴 때 피의 십자가 나오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나와 줬고 이렇게 되면 운명이니까요! 다갓이 캐릭터를 점지해 줬다!

 

그렇게 나온 롯카인 스즈란은 일찍이 각성해 신사를 지키는 롯카인의 일원인 신기의 무녀로,

큰 일에 동반되는 타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겼고 그 결과로 17세에 혼백사인 부모님의 희생을 목도하게 됩니다.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타인의 희생이 자신의 일로 닥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달은 후, 혼백사로서의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도망칩니다. 제멋대로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오면서 혼백사로서의 감각도 깡그리 잊어버리고...(심지어 신기인 거울도 창고에 팽개쳐뒀다가 메인 페이즈에 파헤쳐서 찾아내는 장면 있었음) 그렇게 십여년을 자신의 의무로부터 눈을 돌리고 숨어버린 스즈란이지만, 혼백사 살인사건을 목격한 후 보고를 위해 찾았던 오랜 친구 아카사카 토카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을 거예요.

 

무령도는 영령 사이교西行. 사이교 법사입니다... 아본님께는 "그 사이교입니다.ㅎㅎ" 하고 말씀드렸고 나중에도 적겠지만... 카르마 페이즈에 그에 맞춰서 연출해주셔서 너무나 행복했어요. 어쩌다 보니 스님 혼백사 집단(이름이 생각이 안 납니다 죄송합니다!)으로 가야 할 무령도가 이쪽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구구절절이 있었고요. 사이교는 꽃이 돋아난 나뭇가지의 형태를 하고 있고, 꽃은 그때그때 바뀝니다. 그래서 무령도를 소환할 때마다 주변에 꽃향기가 훅 미친다는 연출을 했었어요. 플레이 끝나고 나서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스즈란이 열일곱 살 이후로는 무령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아왔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어요. 아마도 사이교는 묵묵히, 꾸준히 스즈란이 변하기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플레이 흐름을 따라가서 좋았던 부분을 짚어보자면 사실 너무너무 많아요. 녹음 왜 안 했지...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굉장히 밀도있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서 아직까지도 핸드아웃이 머리속에 쭉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카사카 토카나 PC2 유이즈카 유즈카와 오랜 동갑내기 친구 설정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서 알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는데, 사실... 플레이어는... 혼백사로서도 완전히 꺾여 버린 스즈란과 아직 용케 친구를 하고 있구나 좋은 애들이네(;)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약한 도련님 같아 보여도 당주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토카나, 선생님으로서 아야를 제대로 이끌고 있는 유즈카가 제대로 자기 길을 앞서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부러움이라고 하기에는 체념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열등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희미한 감정이었을 거예요. 유즈카가 "너는 변하지 않았네."라고 말하는 걸, 입장차로 인해 서로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받아들이는 장면은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인터랙션의 묘미지...

 

PC4 쿠키카케 쿠키코가 나오는 신 표마다 비가 내려서(...) 쫄딱 비를 맞은 쿠키코(비스켓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어요)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토카와의 주식(!)을 밀거나, 집에 들여서 머리를 말려주거나 하는 장면도 정말 즐거웠어요. 토카의 친구이면 자기 친구라고 말하는 스즈란을 보며 753님이 정말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캐릭터라고 말씀하셨었죠.(...) 토카와의 관계에 대해서, 아카사카 토카가 이 배후에 있다면 그를 죽일 거라고 말하는 비스켓과 나는 그래도 친구를 지킬 거라고 말하는 스즈란의 구도가 정말 좋았어요. 마지막까지 스즈란과 비스켓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지 못하겠지만... 스즈란은 비스켓이 언젠가 식사라도 하러 놀러와주길 바라겠죠. 에너미를 봉인한 거울을 어떻게 할지 쩔쩔매는 야매혼백사 스즈란에게 천연덕스럽게 베테랑 음양사로서 그럼 그거 가져가도 되나요~ 하고 말해주는 것도 비스켓답고 귀여웠어요... 하지만 그녀는 PC중 최연장자였던 것이다... 전투에서 생의 감각을 느끼는 친구라니,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PC타입이에요. 사랑뿐입니다.
PC1 쿠로사키 아야, 그리고 아카사카 모미지와 첫 조우하는 장면에서 애들은 집에 가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야를 보면서 이제 그만 멈춰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다시 걸음을 디뎠기 때문에... 정말 둘도 없는 빚을 지게 된 셈이에요. 카르마 페이즈에 들어가기 전 모미지를 지키고 싶어서 애쓰는 아야를 보면서, 친구인 아카사카 토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참찰전개한 건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야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땡땡이로 간주하고 나타나는 유즈카... 정말 매 장면 이 사제조 귀여워서 말이죠... 그 와중에 선생님 본다고 오토바이 안 타는 아야 너무너무 착하지 않나요. 아야... 양키 지망이라고 스즈란을 우와 하는 시선으로 본다는 설정을 멘던님께 들었는데... 스즈란같은 이런 반쪽짜리 양아치여도 괜찮은 건가! 하는 혼란이 왔습니다(ㅋㅋㅋ)

 

 

 

카르마 페이즈. 정말... 정말정말 중요하죠. 메인 페이즈와 클라이맥스 페이즈 사이에 들어가는 카르마 페이즈... 오타쿠가 어떻게 카르마 페이즈를 싫어할 수 있을까요? 사무라이 블레이드, 제작자가 보고 싶었던 장면이 너무나도 확실한 알피지입니다. 정직하게, 제게는 클라이맥스 페이즈 전투가 아니라 카르마 페이즈를 위해 이 룰이 있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멋진 흐름이었어요. 롯카인 스즈란이 부러진 자신을 다잡고 무녀로서 다시 한 번 일어나려고 할 때, 너무나 오래 방치해둔 무녀복장과 치하야를 옷장에서 꺼내 걸칠 때, 그 뒤를 돌아보면 벚나무와 그 아래 서 있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의 두 명이 있고... 이 때 연출이 너무나 좋아서 눈물 참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요... 아본님께 그 사이교예요, 하고 말씀드리길 너무너무 잘했다고 생각했고... 아직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찹니다. 그 둘과 눈을 마주치면서 "더 이상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사명을 말할 때 느낀 감정이라는 게요, 정말... 아본님의 멋진 연출에 두 번, 세 번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전투도 또 흠잡을 구석이 없었지요! 다시 한 번 행사를 위한 시나리오임을 절감했던 레디메이드 시트의 엄선된 어빌리티들... 너무나 아름다운 에너미 일러스트...(사랑해...) 무엇보다 뽕찼던 건 2페이즈의 그 막타 한 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그 상황... 다들 확정가챠라고 말씀하시기에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상상만 했는데 실제로 피부로 접하니 상상한 것 이상으로 공기도 뜨겁고 엄청나게 신나더라고요. 살짝 아쉬운 건... 제가 그때 봄스님께 피를 쓰실 타이밍을 안 드리고 넘 흥분한 나머지 어빌리티를 밀어붙여서... 늘 서포터를 할 때 많이 과열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하니까 죄송해서 자꾸 마음에 남더라구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전투 맵이 속력*위치의 표인 점이 정말정말 멋지고 마음에 들어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룰에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무라이블레이드를 또 플레이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건 없구요...^ㅡ'


엔딩도 정말 멋지고 깔끔했죠. 엔딩 이후 아야, 유즈카, 비스켓, 모미지 이렇게 네 사람이 떠나고도 토카와 비월문을 지키면서 교토에 남아있을 스즈란, 가끔 명절(?)때마다 고향으로 친구들이 돌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과거의 큰 과오로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설정은 굉장히 흔하지만, 이걸 여캐로, 사실은 스테레오타입일 수 있었던 무녀인 PC로 할 수 있었기에 굉장히 보람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에서 성장형 PC를 굴리는 것은 스테레오타입을 극복하는 것보다도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주변의 플레이어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시고 PC들은 등을 밀어주어서, 스즈란이 다시 무령도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스즈란은 제게 굉장히 멋지고 특별한 PC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요.
아 정말 제가 선생님들... 제가... 제가 정말 아야랑 유즈카랑 비스켓 사랑하고요... 아본님 사랑하고 봄스님 나고님 멘던님 사랑합니다... 플레이를 복기하니 다시 이렇게 사랑이 차오르는데 너무너무 행복하네요. 갓플레이... 함께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